– 고형 제제는 어떻게 ‘몸 안에서 액체’가 될까?
안녕하세요, ssub0w0입니다.
지난 글에서 용해도 이야기를 했습니다.
“얼마나 많이 녹을 수 있느냐”가 용해도라면,
오늘 다룰 **용출(dissolution)**은
“얼마나 빨리 녹아 나오는가”
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특히 정제, 캡슐 같은 고형 제제는
몸 안에서 바로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,
반드시 붕해 → 분산 → 용출 → 투과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.
이 흐름은 제제학 2장 도식(붕해–분산–용출–흡수 그림)에서도 굉장히 강조되는 부분이죠.
1. 붕해 → 분산 → 용출 → 투과, 흐름부터 잡아봅시다
고형 제제(예: 정제)를 한 알 먹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.
입 안이나 위장관에 들어가면, 이 약은 대략 이렇게 행동합니다.
① 붕해(disintegration) – 알약이 ‘부서지는’ 단계
- 처음 정제는 한 덩어리 고체입니다.
- 물(위액, 장액)을 만나면, 정제 안에 들어 있는 붕해제가 물을 흡수하고 부풀면서
정제가 여러 조각으로 깨져서 부서지게 됩니다. - 이 과정을 붕해라고 합니다.
비유하자면, 딱딱한 과자를 물에 담가 두었더니
부스러기 조각들로 와르르 부서지는 느낌입니다.
② 분산(deaggregation) – 작은 입자들로 흩어지는 단계
- 붕해로 “큰 덩어리”가 여러 개의 덩어리 조각으로 깨졌다면,
- 분산은 그 조각들이 더 잘게, **미세한 입자(level의 분말)**로 흩어지는 단계입니다.
- 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커지고, 용출이 더 잘 일어나는 준비가 됩니다.
③ 용출(dissolution) – 고체에서 ‘용액 속 분자’가 되는 단계
- 이제 각 입자 표면에서 약물 분자가 물 속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.
- 고체 상태로 붙어 있던 분자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와
용액(위액/장액) 속에 녹아 있는 상태가 됩니다. - 이게 바로 용출입니다.
- 우리가 실험실에서 하는 ‘용출시험’이 바로 이 단계의 속도를 보는 시험입니다.
④ 투과(permeation) – 장벽을 넘어 혈액 안으로
- 용액 속에 녹아 있는 약물 분자는
**장 점막 → 세포막을 통과 → 혈액(전신순환)**으로 들어갑니다. - 이 단계를 투과 혹은 흡수라고 부릅니다.
정리하면, 고형제는 이렇게 됩니다.
정제(덩어리)
→ 붕해(조각)
→ 분산(입자)
→ 용출(용액 속 분자)
→ 투과(혈액으로 이동)
즉, **용출은 ‘고체가 약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, 액체로 전환되는 핵심 관문’**입니다.
2. Noyes–Whitney 식, 진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
용출속도는 고전적으로 Noyes–Whitney 식으로 설명합니다.
식 자체는 이렇게 생겼지만,
dC/dt = k · A · (Cs − C)
굳이 수학처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.
각 기호의 의미만 이해하면 됩니다.
- dC/dt : 시간당 농도의 변화량 → 용출 속도
- k : 온도·점도 등 환경에 관련된 상수 → 용출 환경의 특성
- A : 고체 입자의 표면적
- Cs : 고체 바로 근처에서의 포화농도 (최대로 녹을 수 있는 농도)
- C : 벌크 용액(멀리 떨어진 곳)의 농도
즉, 말로 풀면 이렇습니다.
“시간당 녹아 나오는 양은
(입자 표면적) × (포화농도와 현재 농도의 차이) × (환경 특성 값)”에 비례한다.
설탕 큐브 비유로 다시 한 번
뜨거운 물에 각설탕을 넣는 상황을 떠올려 보겠습니다.
- 설탕 블록이 클수록 →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천천히 녹습니다.
- 잘게 부순 설탕을 넣으면 → 표면적이 커져서 훨씬 빨리 녹습니다.
- 이미 물이 달아서 거의 포화 상태라면 → 더 이상 잘 안 녹습니다.
- 숟가락으로 젓지 않고 가만히 두면 → 표면 근처만 진해지고 아래쪽은 옅게 남습니다.
여기서
- 설탕이 닿아 있는 물 바로 근처의 농도 → Cs(거의 포화)
- 컵 전체 평균 농도 → C
- 숟가락으로 젓는 행동 → Cs와 C의 차이를 유지해주는 역할(교반)
이렇게 대응시켜 생각해보면
Noyes–Whitney 식이 그냥 “설탕 녹는 과정의 정식 버전” 정도로 느껴집니다.
3. 확산층(diffusion layer) 개념 – ‘입자 주변의 얇은 껍질’
입자 하나를 확대해서 본다고 상상해볼게요.
- 입자 표면 바로 바깥에는
약물이 이미 많이 녹아 있는 진한 층이 생깁니다. - 이 얇은 층을 **확산층(diffusion layer)**이라고 부릅니다.
- 이 확산층 바깥에는 아직 농도가 낮은 벌크 용액이 있습니다.
용출 과정은 이렇게 일어납니다.
- 입자 표면에서 약물이 녹아서 → 확산층 쪽으로 나옴
- 확산층에서 벌크 용액 쪽으로 확산(퍼짐)
- 벌크 용액 농도가 높아질수록 Cs − C 차이가 줄어들어 → 속도가 느려짐
비유하면,
입자 주변에 형광 물감이 진하게 있는 얇은 막이 있고,
그 색이 서서히 물 전체로 퍼져 나가는 모습입니다.
그래서 용출을 빠르게 하려면
- 확산층을 얇게 유지하고(잘 휘저어 주고),
- 표면적을 크게 만들고(입자 작게),
- Cs와 C의 차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.
4. 용출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(하나씩 자세히)
이제 본격적으로, 용출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볼게요.
① 입자 크기 (Particle size)
- 입자 크기 ↓ → 표면적 ↑ → 용출속도 ↑
- 입자를 미세화(micronization)하면
같은 양의 약이라도 물과 닿는 면적이 커져서 더 빨리 녹습니다. - 다만 너무 미세하면
서로 달라붙어 응집이 생기고,
오히려 실제 유효 표면적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어
“정도껏”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.
② 표면적 (Surface area)
입자 크기와 연결되지만,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.
- 표면이 매끈한 입자 vs 표면이 거칠고 구멍 많은 입자
- 입자 크기가 같더라도 실제 표면적은 다를 수 있습니다.
표면적이 클수록
- 물과 만나는 위치가 많아지고
- 그만큼 더 빨리 녹을 수 있습니다.
제제학에서는
입자 크기뿐 아니라 **비표면적(specific surface area)**도 함께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.
③ 점도 (Viscosity)
용출 환경의 점도도 중요합니다.
- 점도가 낮으면 → 약물이 확산층에서 벌크로 잘 퍼져 나가 용출이 빠릅니다.
- 점도가 높으면 → 확산이 느려져 용출속도도 느려집니다.
예를 들어,
- 물 같은 희석한 환경에서는 약물이 잘 퍼지지만
- 점성이 높은 내용물(시럽, 고점도 현탁액) 속에서는
약물이 확산하기 어려워 속도가 줄어듭니다.
그래서 용출을 고려할 때
단순히 “녹느냐/안 녹느냐”뿐 아니라
녹은 뒤 얼마만큼 빨리 퍼질 수 있는 환경인지도 함께 보는 게 중요합니다.
④ 온도 (Temperature)
일반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,
- 용해도가 증가하는 경우가 많고
- 분자 운동이 활발해져 확산 속도도 증가합니다.
그래서 따뜻한 물에서 설탕이 더 잘 녹듯,
온도가 높을수록 용출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.
다만 의약품에서는
- 약물이나 첨가제의 분해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
무조건 고온으로 갈 수는 없고,
**체온(약 37℃) 또는 시험 조건(약전 규정)**에 맞춰 평가합니다.
⑤ 교반속도 (Agitation / Stirring)
용출 시험기에서
교반 날개가 도는 속도, 회전 바스켓 속도 등은
확산층 두께와 Cs − C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.
- 교반속도 ↑ → 확산층이 얇아짐 → 용출속도 ↑
- 젓지 않은 컵 vs 숟가락으로 계속 저어주는 컵을 떠올리면 됩니다.
그래서 약전 용출시험에서는
교반속도를 규격으로 정해두고,
그 조건에서의 용출 패턴을 기준으로 품질을 평가합니다.
⑥ pH (용출 환경의 산도)
많은 약물이 약산성 또는 약염기성이기 때문에,
pH에 따라 이온화 정도, 그리고 용해도/용출이 달라집니다.
- 약산성 약물 → pH가 높을수록(알칼리성) 더 잘 이온화되어 용해도↑
- 약염기성 약물 → pH가 낮을수록(산성) 이온화되어 용해도↑
이 말은,
같은 약이라도
- 위(pH 1~3)
- 소장(pH 5~7)
어느 쪽에서 더 잘 녹을지가 다르다는 뜻입니다.
제제학에서는
이 pH 의존성을 고려해
- 장용정(enteric coated tablet)
-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게 하는 코팅
같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.
⑦ 미셀 가용화(Micellar solubilization)
난용성 약들의 경우,
단순히 물에 녹이기 어렵기 때문에
계면활성제가 자주 동원됩니다.
계면활성제가 일정 농도 이상이 되면
**미셀(micelle)**이라는 구조를 형성하는데,
- 미셀 속(소수성 중심)에 약물이 들어가고
- 바깥은 친수성이어서 전체적으로는 물에 더 잘 분산될 수 있습니다.
이렇게 되면,
- 겉보기에는 용해도가 증가한 것처럼 보이고
- 용출속도도 실제로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.
다만,
미셀 가용화가 너무 과하면
약물이 미셀에 너무 잘 잡혀서
막 투과 단계에서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어,
농도와 종류 선택이 중요합니다.
Day 39 핵심 정리입니다
- 고형제는 붕해 → 분산 → 용출 → 투과 순서를 거쳐 효과를 냅니다.
- 용출은 “고체에서 용액 속 분자로 넘어가는 단계”입니다.
- Noyes–Whitney 식은
→ “표면적 × (포화농도–현재 농도) × 환경 특성”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. - 용출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
→ 입자 크기, 표면적, 점도, 온도, 교반속도, pH, 미셀 가용화 등입니다. - 용출은 단순 시험이 아니라, 제형 성능과 흡수 예측의 핵심 지표입니다.
글을 마치며
용해도는 “얼마나 많이 녹을 수 있느냐”였다면,
용출은 “얼마나 빨리 녹아서 몸이 쓸 수 있는 형태가 되느냐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.
특히 정제·캡슐 같은 고형 제제에서는
용출이 곧 효과 발현 속도와 정도로 연결되기 때문에,
제제학과 품질평가에서 항상 중심에 서 있는 개념입니다.
다음 글에서는
👉 용출시험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
(품질관리, 제형 비교, 생물학적 동등성 평가와의 연관성 등)
조금 더 실무적인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.
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.
천천히 한 번 더 복습해보시면,
정제 하나가 몸 안에서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머릿속에 훨씬 잘 그려질 겁니다. 감사합니다..
— ssub0w0